글 번호 : 45 작성자 : skybok

천형천혜(天刑天惠)의 그늘 (수필)


천형천혜(天刑天惠)의 그늘

                                                             메주 고 제 웅



고뇌가 깊어지면 의식의 심층에서 시적 감성이 발생하고 사고(思考)의 쓰나미(tsunami)가 밀려와 영혼의 해안을 덮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정황을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이 글로 그려내는 작업이 영혼을 노래하는 시(詩)이지 싶다. 이런 연유에서 시인의 삶은 보이지 않는 힘이 글을 쓰도록 내모는 것이 아닐까. 살다가 보면 일엽편주를 타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 같은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으리라. 거센 폭풍우 속에서 성난 파도에 배가 뒤집히려는데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 이처럼 시인의 삶은 천형천혜(天刑天惠)* 속을 걸어가는 노정이다.


글다운 글을 쓰려면 삼다(三多)*가 기본적인 필요충족조건이다. 글과 씨름하다가 보면 자연히 생업을 등한시할 개연성이 높다. 일상에서 얼마나 춥고 배가 고파야 글로 승화될까. 전대의 유명 시인들의 고단한 삶의 흔적을 살피다보면 목이 멘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이런 까닭에 시인으로 삶을 누리려면 시간과 경제적인 안배도 잘해야 한다. 물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곤욕을 치르게 마련이다. 이런 맥락에서 하루에도 몇 번에 걸쳐“주인공아! 마음 중심 잡아라. 살아서나 죽어서나 중심 잡는 것이 열반이다.” 라며 자성했다. 하지만 이 같은 모습을 이웃들은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듯 했다. 아마도 물이 맑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맑은 사람 곁에서는 행동거지가 부자연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그보다는 옹색한 삶을 자처하는 시인들의 삶이 탐탁하지 못한 탓이리라.


맏사형*의 사십구재 날인데 T 본사의 넓은 설법 전에 앉을 자리가 없었다. 조카 상좌들 틈에 끼여 맏사형의 왕생극락을 염원할 뿐이었다. 도반들은 상석에 앉아 자신들의 위엄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앉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권속 가운데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면 문제가 달랐으리라. 백수의 왕인 사자 같던 어른 스님이 떠난 굴속에는 너구리들만이 우글거릴 뿐이었다. 더욱이 조카 상좌 하나가 얘기를 하다가 내게 다짜고짜“자네”라고 호칭했다. 세속의 나이는 같을지라도 엄연히 사숙이다. 못난 녀석이다 싶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인해 준 시집을 들고서 위아래로 흔들며 “이 따위가 뭔 소용이냐”라고 큰소리로 비아냥거림이 마치 결이 삭지 않은 푸성귀 같았다.


불혹이 지나면 결이 삭아야 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잘난 듯이 말소리가 크면 볼썽사납다. 더욱이 지도자나 교육자를 비롯하여 성직자 등이 그 지위나 직에 어울리지 않게 설치면 결이 삭으라고 소금 한 줌 뿌려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지 모른다. 또 지천명을 지나면 뜸이 들어서 누가 봐도 맛깔 나는 삶으로 아름다운 보석 같아야 하리라. 그렇지 못하고 설익은 밥 같다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또한 환갑 진갑을 지나 결이 삭고 뜸이 들었다는 얘기는 별로이다. 왜냐하면 노년이 되면 발효는 물론 곰이 삭아야 마땅하다. 마치 곰삭은 젓갈이나 잘 숙성된 된장 간장처럼…


발효의 사전적 의미는 “효모나 세균 등의 미생물이 지닌 효소의 작용으로 유기물이 분해되어 알코올류, 유기산류, 탄산가스 따위가 발생하게 된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인생에 발효는 어떤 의미일까? 희비애락을 겪으면서 인성에 순수, 열정, 사랑, 자비, 헌신, 배려 등이 어우러져 인간미가 풍기고 인덕(仁德)이 배어나는 인품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말 한마디에 천금이 오르내린다.”라는 얘기처럼 말이 법이 되는 것 같다. 뉴스를 보면 우리사회의 지도층 인물들이 잘못 뱉은 말 몇 마디에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상을 살면서 말 잘하며 살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성직에 몸담아왔다. 하지만 아직 천수경의 첫 구절 ‘입으로 짓는 업을 맑게 하라’는 “정 구업 진언(淨 口業 眞言)”의 단 한마디도 실천하지 못해 부끄럽기 그지없다. 내뱉은 말은 독화살이 되어 되돌아오기 십상이다. 이런 맥락에서 선배 문인들은 먼저 사람이 되고 글을 쓰라고 당부했었나보다. 지난날 글 때문에 필화(筆禍)를 당해 패가망신하던 선인들이 드물지 않다. 글은 문자로 기록되기 때문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뚜렷이 남기게 마련이다.


승려로서 실패한 삶이었기에 빈승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시인의 삶은 실패할 수 없다는 생각이 굳은 결심이다. 이 때문에 시인이 된 이후에는 어쩌다가 지인들이 노래방을 같은 유흥장에 동행을 제안해도 거들떠보지 않고 외면해오고 있다. 아울러 이성(異性)들과 어울림도 가능한 자제함은 물론이고 감투나 명예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다만 막노동을 노동자보다 많이 했더니 땀샘이 맑아져 글에서 꽃피고 새들이 지저귀는 것 같다.


시, 수필, 문학 등은 호구지책(糊口之策)이 될 수 없었다.


시인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었다. 서유기의 손오공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머리띠를 벗어 던지고 부처님을 벗어나려고 하늘 높이 날았다. 구름을 지나 수 없는 천상세계를 지났다. 이제 부처님의 영역을 벗어났겠는지 생각했는데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 독자보다 문인의 수가 많은 것 같다. 아무리 좋은 글을 써도 읽어줄 사람이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직하게 글을 쓰는 게 온당한 일일까. 글쓰기에 회의를 느껴 붓을 꺾어 던져버리고 살려는 데 그게 아니었다. 가슴에 고뇌가 일기 시작하더니 무엇인가 얹힌 것 같고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렸다. 더욱이 의식구조가 다른 부류와 교류하다 보니 내 자신이 망가져 감을 느꼈다.


또다시 원고지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결국 붓을 잡고 글을 씀으로써 체증이 뻥 뚫렸는지 가슴속이 시원해졌다. 비록 독자가 몇 몇 뿐이라 할지라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 같다. 예로부터 이런 것을 두고 ‘천형천혜’라고 일컫는 것은 아닐까. 또한, 하늘은 일상생활도 글을 쓰는데 꼭 필요한 만큼만 해결해 주는 것 같았다. 이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주적 자연 섭리 속에서 보호관찰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마치 중대한 범죄자들이 출소 후에 전자 발찌를 차고 감시되는 것처럼 ‘천형과 천혜’라는 그물망 속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된 것이 아니랴. 신들이 시인의 곁을 맴돌며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는 것 같다. 대체 전생에 어떤 죄를 짓고 유배되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내장산이 북으로 달려와 코끼리처럼 엎드린 산으로 정읍 사람들은‘코끼리산’이라고 부른다. 1949년 8월 19일 밤에 코끼리산 밑에서 나무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듬해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해 1953년 7월 27일에 휴전되었다. 3년간의 긴 전쟁이었으니 국토가 얼마나 피폐해졌을까? 그런데다가 내 아버지는 땅 한 평 소유치 못한 빈농이었다. 중학교 입시에 당당히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 때문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호적이 1951년 8월 21일생으로 오기(誤記)되어 스물네 살의 늦은 나이로 군에 입대했다. 자대 내무반에 쓰지 않는 페치카(pechka)가 있었는데 그 위에 책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하루는 포대장*이 도서 책임자를 뽑겠다면서 자원할 자는 손을 들라고 했다. 손을 들려는 데 옆에서 허벅지를 쿡쿡 찌르며 만류하는 사람이 있었다. 괜한 소임을 맡아 골치 아플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고참병의 만류에도 개의치 않고 손을 번쩍 들었다. 이에 포대장이 “그래 좋다 받아라”라면서 열쇠를 건넸다. 이렇게 내무반의 도서 책임자가 되었다. 책장 안에는 세계 명작 문학지들이 가득 차 있었다.


군 생활 틈틈이 독서를 즐겼다. 자유시간 뿐 아니라 대대(大隊)의 웅변 연사로 뽑힌 까닭에 웅변대회가 있을 때는 연습을 핑계로 열외를 받을 수 있었다. 웅변 연습을 몇 번 하고 나면 일과 시간 내내 문학지를 탐독할 수 있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펄 벅의 대지, 스탕달의 적과 흑,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등 다수의 세계 명작 문학지를 탐독하며 제대하면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꿨다.


제대 후에 생활이 나를 속여 먼 길을 돌고 돌아 늦깎이로 시인이 되었다.


학력 때문에 아버지를 원망했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세상 이치를 깨우치면서 사리 판단이 분명해졌다. 아버지에 대해 섭섭함을 풀고 하늘을 향해 “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리며 가난하셨기에 망정이지 넉넉한 살림을 사셨다면 제가 수명장수 하겠습니까? 대학에 다녔다면 정의에 불타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해 데모를 선동하는 연사나 지휘자가 되어 맨 선두에 섰을 것입니다. 그리했다면 젊은 나이에 희생양이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하늘이 젊은 시절 온갖 시련을 겪게 하여 늘그막에 시인, 수필가가 될 자질을 쌓도록 이 놈을 이 세상에 유배시킨 것이 자명합니다. 죄인이 천형으로 유배되어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불효자식 때문에 이승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무나 시인이나 수필가를 할 수 있습니까? 천혜를 받은 자만이 영광을 누릴 수 있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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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형천혜(天刑天惠) : 하늘이 내리는 형벌과 은혜

* 삼다(三多) : 다독(多讀), 다고(多考), 다작(多作)

* 맏사형 : 한 스승의 제자 중 맏이

* 위리안치 (圍籬安置) : 예전에 죄인을 귀양살이 하는 곳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어두는 일을 이르던 말

* 포대장(砲隊長) : 포대(砲隊)의 중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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