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 / 메주스님 고 제 웅
1.
찬바람이 불면
머리가 하얗게 세어, 하얀 상복 날리며
소복 가슴으로
후유
숨 가쁘신 할머니
웬 백 상여 행렬이 이리도 눈부시옵니까
이 땅
기막힌 삶을
일구며 지켜 오신
후유
숨 가쁘신 할머니
할아버지 기일이 언제이온데
장에 가시는
걸음 걸음
서걱서걱
후유
숨 그리도 가쁘십니까.
서리꽃 하얗게 피었습니다
2.
억새를 한해살이 풀이라 마옵소서
대공은 말라 사각대고
머리는 희어
바람에 날리지만
우리임 백 상여 행렬 같지만
억새가 우는 울음을 타고
하산하면
뿌리의 행진곡을 들을 수 있나니
드럼이며
나팔이며
아아, 태평소까지
머릿결 하얀 울음이
저 하늘을 양양히 가듯
내 삶이 양양히 가나니
억새를 한해살이 풀이라 마옵소서
그리움과 설움이 망망히 가옵니다
3.
황토밭 질펀한 길에
사락사락
자음과 모음으로 치맛단을 내리옵고
가슴 속 깊이 맺힌 사연을 보내옵니다
오실 재 길이 멀어서
아니 오시나
세월이
서릿발을 세워서
행여, 발이라도 다치실세라
고의적삼일랑 벗어서 언 땅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내리밟고 오시옵소서
오시다가
솔잣새* 우는소리를 들으셨나요
우리네 인연도 어긋나서
기다리다 바람맞아
구안괘사를 앓고 있사옵니다
혈 자리는 어디옵고
침은
얼마나 깊이 놓아야 합니까
북풍이 엉치 마저 때리고 있사옵니다.
*솔잣새:"겨울 철새 몸 길이 약14㎝ 출현기/12월,1~2월 분포/한국, 일본,
중국, 몽골, 러시아 전설/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그 못을 뽑다가
부리가 어긋났다 함."
4.
북풍에 주저앉아 목놓아 우시나요
하얀 꽃 빛이
창천을 가듯이
한숨이 지천에 흐르옵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꽃이 아름답다 하지 마옵소서
한설보다 차가운 설움이
뿌리를 타고
시내를 이루다 강으로 흘러
종 내는 한恨 깊은 바다를 이루옵니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 때부터
손바닥에 박힌 못으로
죽음보다 더한
고역을
낱낱이 들춰 가면서
쓴, 일지 속에
제 삶이 꽃피고 있사옵니다
박토 속에 향 빛도 그윽하게
5.
몸이 서릿발에 얼다가 녹다가
풍장 속을 걷다가
순백 세상이 되었을 때
희고도 누렁 뼛골이 드러났사옵니다
옷은 마지막 한 잎 풀잎마저 다, 벗고
어둠을 뚫고 하늘을 향해 달려가는
사리舍利 같은 의지로
선,
나신裸身에
바람이 불고 있사옵니다
생의 백서를 써서 받치오리까
휘적휘적 걸어온 생이
일회적이었고
눈꺼풀이 감기는 사이
정처없는 나그네가 되었사옵니다
장례식을 돋우지 마세요
본래 한 물건도 없었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