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번호 : 35 작성자 : skybok

억새 1~5


억새 / 메주스님 고 제 웅

 

 

1.

 

 

찬바람이 불면

 

머리가 하얗게 세어, 하얀 상복 날리며

 

소복 가슴으로

 

후유

 

숨 가쁘신 할머니

 

 

웬 백 상여 행렬이 이리도 눈부시옵니까

 

이 땅

 

기막힌 삶을

 

일구며 지켜 오신

 

후유

 

숨 가쁘신 할머니

 

 

할아버지 기일이 언제이온데

 

장에 가시는

 

걸음 걸음

 

서걱서걱

 

후유

 

숨 그리도 가쁘십니까.

 

 

서리꽃 하얗게 피었습니다

 

 

 

2.

 

 

 

 

 

 

 

억새를 한해살이 풀이라 마옵소서

대공은 말라 사각대고

머리는 희어

바람에 날리지만

우리임 백 상여 행렬 같지만

억새가 우는 울음을 타고

하산하면

뿌리의 행진곡을 들을 수 있나니

드럼이며

나팔이며

아아, 태평소까지

머릿결 하얀 울음이

저 하늘을 양양히 가듯

내 삶이 양양히 가나니

억새를 한해살이 풀이라 마옵소서

 

그리움과 설움이 망망히 가옵니다

 

 

 

3.

 

 

황토밭 질펀한 길에

 

사락사락

 

자음과 모음으로 치맛단을 내리옵고

 

가슴 속 깊이 맺힌 사연을 보내옵니다

 

 

오실 재 길이 멀어서

 

아니 오시나

 

세월이

 

서릿발을 세워서

 

행여, 발이라도 다치실세라

 

고의적삼일랑 벗어서 언 땅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내리밟고 오시옵소서

 

오시다가

 

솔잣새* 우는소리를 들으셨나요

 

우리네 인연도 어긋나서

 

기다리다 바람맞아

 

구안괘사를 앓고 있사옵니다

 

 

혈 자리는 어디옵고

 

침은

 

얼마나 깊이 놓아야 합니까

 

 

북풍이 엉치 마저 때리고 있사옵니다.

 

 

*솔잣새:"겨울 철새 몸 길이 약14출현기/12,1~2월 분포/한국, 일본,

 

중국, 몽골, 러시아 전설/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그 못을 뽑다가

 

부리가 어긋났다 함."

 

 

 

 

 

4.

 

북풍에 주저앉아 목놓아 우시나요

 

하얀 꽃 빛이

 

창천을 가듯이

 

한숨이 지천에 흐르옵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꽃이 아름답다 하지 마옵소서

 

한설보다 차가운 설움이

 

뿌리를 타고

 

시내를 이루다 강으로 흘러

 

종 내는 한깊은 바다를 이루옵니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 때부터

 

손바닥에 박힌 못으로

 

죽음보다 더한

 

고역을

 

낱낱이 들춰 가면서

 

, 일지 속에

 

제 삶이 꽃피고 있사옵니다

 

 

 

박토 속에 향 빛도 그윽하게

 

 

 

5.

 

 

몸이 서릿발에 얼다가 녹다가

 

풍장 속을 걷다가

 

순백 세상이 되었을 때

 

희고도 누렁 뼛골이 드러났사옵니다

 

 

옷은 마지막 한 잎 풀잎마저 다, 벗고

 

어둠을 뚫고 하늘을 향해 달려가는

 

사리舍利 같은 의지로

 

,

 

나신裸身

 

바람이 불고 있사옵니다

 

 

생의 백서를 써서 받치오리까

 

휘적휘적 걸어온 생이

 

일회적이었고

 

눈꺼풀이 감기는 사이

 

정처없는 나그네가 되었사옵니다

 

 

장례식을 돋우지 마세요

 

본래 한 물건도 없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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